올해 첫 번째 글, 먼저 본 책의 여덟 번째 이야기를 보냅니다. 『허균의 맛: 도문대작, 조선 미식선비의 음식 노트』(김풍기 지음)를 내며 |
|
|
귀에 딱지가 앉는 제목들이 있습니다. 『정사 삼국지』에 붙은 ‘배송지 주’가 그렇습니다. 궁금해서 죽겠는데 번역돼 있지 않아 찔끔찔끔 만나볼 수밖에 없었던 전설의 존재. 기어코 저희가 한 달 전에 냈습니다. 양이 어마어마하더군요. 속이 후련합니다. 첸중수錢鍾書의 『관추편管錐編』도 그런 책이죠. 제목은 ‘대나무 관管’으로 하늘을 보고 ‘송곳錐’으로 땅을 가리킨다는, 즉 자신의 좁은 견해를 펼쳐보았다는 겸사의 표현이지만, 실제 내용은 “중국 고전을 징검다리 삼아 인류의 지적 유산을 한데 엮은 전5권의 방대한 비교인문학의 보물 창고”입니다. 이걸 번역해보겠다고 나섰던 적이 있습니다. 나름 동양학을 하신 강호의 고수께 검토를 부탁드렸는데 얼마의 시간이 지나 “도저히 넘볼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서양철학 전문가와 공역한다면 모를까 언감생심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등 7개국 이상의 문헌을 인용하며 동서양 사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고, 언어의 중의성이나 비유의 방식이 문화권마다 어떻게 닮았고 다른지도 파고드는 책이니, 저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구나 포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관추편』은 천추의 한을 남기고 다시 중국 본토로 돌아갔습니다.
글항아리에서는 이런 무모한 도전을 간헐적으로 해왔네요. 에드워드 윌슨의 『개미』도 아픈 추억입니다. 이름을 말씀드리면 바로 알 수 있는 국내 최고 전공자가 후배 박사들과 팀을 꾸렸지만, 한국어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생물학 전문용어가 벽이었습니다. 두 개 장이 해결되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습니다. 그러고 보니 원서의 출판사인 하버드대출판부에서 저희더러 “정말 가능하겠어?”라고 의문의 뉘앙스를 비쳤던 기억이 납니다. 얘기하다보니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도 떠오르네요. 뱁새의 정식 명칭은 붉은머리오목눈이인데요, 다리 길이가 2센티미터라고 합니다. 황새 다리는 20센티미터가 넘으니 열 배의 역량을 키워서 돌아오는 수밖에요. 다만 뱁새의 작고 통통한 외모와 삐삐삐 하는 소리가 귀엽게 받아들여지길 바랄 뿐입니다. |
|
|
붉은머리오목눈이 a.k.a 뱁새 (출처:HKBC환경방송) |
|
|
올 상반기에 나올 『유여시 별전柳如是別傳』은 일종의 한을 풀어준 책이라고 할까요?
20세기 초 중국의 국학대사쯤으로 추앙받던 학자 천인커陳寅恪 선생이 눈이 멀고 다리가 부러지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말년에 제자들에게 구술로 불러줘 완성했다는 책입니다. 책 좀 들춰본 편집자들 사이에선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유여시는 명청 교체기 강남에서 기녀妓女로 프로필을 시작하죠. 하지만 곧 당대 최고의 문사인 전겸익과 연애하여 그의 부인이 됩니다. 이 책은 유여시의 일대기를 통해 그의 독립적인 정신과 자유로운 사상, 넘볼 수 없는 천재성이 만들어낸 담론의 만찬을 보여줍니다. 당시의 시문과 역사적 사건들을 치밀하게 고증한 역사 비평의 정수죠. 이걸 모두 암기해서는 구술로 불러줬다는 게 믿겨지십니까? 어쩌면 천인커는 유여시에게서 자신을 본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이 책을 저희가 내게 됐습니다. 근데 구술로 받아적었다는 책 분량이 200자 원고지 1만 매입니다. 500쪽으로 다섯 권이나 되는 양입니다. 현재 절반 정도 공정이 진행됐는데 올 상반기가 지나기 전에는 보여드리겠습니다. |
|
|
글항아리가 선보일 『유여시 별전』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주세요. |
|
|
사실 오늘은 『허균의 맛』이라는 신간을 소개하려고 했는데 뜻밖에 이야기가 이쪽으로 흘렀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이 책도 “귀에 딱지가 앉는다”와 일맥상통하는 책입니다. 허균의 『도문대작』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저는 오래 전부터 이 책을 마음에 품어왔습니다. 허균이 쓴 음식 책이라고 알고 있는데 번역을 하고 글을 붙여서 책을 낼 수 없을까 궁리했더랬죠. 제목부터가 아주 해학적입니다. ‘도문屠門’은 푸줏간의 문이고, ‘대작大嚼’은 크게 씹는다는 뜻입니다. 고기를 먹고 싶은데 먹을 수가 없으니 푸줏간 문이라도 바라보며 크게 쩝쩝거려본다는 겁니다. 허균은 과거시험 실무 관료로서 부정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유배지로 떠납니다. 이를 개탄한 절친한 벗 석주 권필權韠이 권력자들을 야유하는 시를 지었다가 괘씸죄로 역시 유배형을 받았죠. 권필은 동대문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술을 폭음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허균은 절필을 선언하죠.
유배지에서 형편없는 음식만 먹던 허균이, 과거에 먹었던 산해진미를 떠올리며 그 맛을 글로 복원해낸 것이 『도문대작』입니다. 그런데 워낙 춘추필법이라서 내용이 자세하지는 않습니다. 핵심만 딱딱 적는데 가령 “붕어. 전국 어디나 모두 있지만 강릉 경포는 바닷물과 통하기 때문에 맛이 가장 좋으며 흙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식입니다. 간략하지만 뭔가 고수의 냄새가 나죠. |
|
|
『허균의 맛: 도문대작, 조선 미식선비의 음식 노트』 김풍기 지음 |
|
|
허균은 사실 타고난 미식가입니다. 허균의 아버지인 허엽許曄은 조선 붕당정치의 시작점인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의 분당 때, 동인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허균은 어려서 집에 온갖 음식 선물이 들어와 전국의 산해진미를 다 맛보았다고 『도문대작』 초반에 적어놓았습니다. 게다가 부잣집에 장가를 듭니다. 처가가 강릉이니 이쪽 음식에도 일가를 이루게 되죠. 조선시대에는 청나라 사신들을 많이 접대해야 했습니다. 허균이 재기발랄해서 즉석시를 그렇게 잘 지었답니다. 자연히 이들을 응대하는 일을 많이 맡았죠. 중국에도 자주 넘어갔다 왔고요. 게다가 지방관도 했으니…… 그냥 허균의 말로 그의 음식 프로필을 대신하겠습니다. |
|
|
❝맛난 고기든 아름다운 꽃부리든 씹어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도문대작 인引」 |
|
|
『허균의 맛』은 허균의 맛인 동시에 김풍기의 맛이기도 합니다. 제목을 지을 때 '이러면 반쪽짜리 제목인데……'라는 아쉬움이 든 게, 이 책엔 저자 김풍기 교수의 음식 추억이 많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한문학자인 저자가 허균의 전공자라는 건 잘 알려져 있죠. 그가 『도문대작』을 처음 만난 건 30대 중반이었습니다. 그냥 음식 목록에 불과해 보여 관심을 두지 않았죠. 나중에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다가 방풍죽이라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
|
|
❝나의 외가는 강릉인데 그곳에는 방풍이 많이 난다. 2월이면 이 지역 사람들은
이슬을 맞으며 새벽같이 나가 막 돋아난 방풍 싹을 따서 해를 보지 못하게 한다.
곱게 찧은 쌀로 죽을 끓이는데, 반쯤 익었을 때 방풍 싹을 넣는다.
그것이 끓기를 기다려서 차가운 사기 주발에 옮겨 담았다가 반쯤 식으면 그것을 먹는다.
달콤한 향기가 입에 가득하여 사흘이 지나도 스러지지 않는다.❞ 『도문대작』 |
|
|
이 구절에 꽂혀 김풍기 선생은 어머니께 여쭈게 됩니다. 그랬더니 발에 채는 게 방풍이라는 말이 돌아오죠. 그래서 한번 정독하게 되었고, 주변의 후배 연구자들에게도 번역하거나 글로 써보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다들 나서지 않았습니다. 결국 본인이 직접 나섰죠. 허균의 『도문대작』을 당시의 역사와 문화, 자신의 음식 경험과 결부해서 열배, 백배로 풍성하게 펼쳐낸 것입니다. 한마디로 21세기와 17세기가 회통하는 음식 만담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밭에서 나는 것, 노지에서 움트는 것, 파도에 쓸리는 것, 하늘을 나는 것,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이 망라돼 있습니다. 조리법보다는 재료에 방점이 찍히고요. 이제 입춘을 앞두고 있는데 『허균의 맛』 앞에서 ‘허문대작’을 한번 해보심은 어떠실지요. |
|
|
오늘의 먼저 본 책 어떻게 읽으셨나요?
항아리를 클릭해서 글을 넣어주세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