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항아리 애독자 선생님들은 벌써 소식을 접하셨겠죠? 이번 <먼저 본 책>에서는 얼마 전 출간된 『정사 삼국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정사 삼국지』의 가장 큰 특징은 「배송지 주」를 완역했다는 것이죠. 그 어렵다는 『문선』 역주 작업을 주도했고, 『동주 열국지』를 반세기 만에 전면 검토 완역본을 펴냈으며, 최근에는 『손자병법』 십일가주까지 작업을 마쳐 출판사에 넘겨주신 김영문 선생님의 작업이라 믿고 읽으셔도 됩니다. 「배송지 주」는 32만 자의 방대한 분량으로 230여 종의 문헌을 통해 삼국의 역사를 보충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일서逸書가 많은데요, 오직 「배송지 주」에만 살아 있는 셈입니다. 이 일서들에 대한 해제도 부록인 『정사 삼국지 사전』에 실려 있습니다. 벌써 알라딘 북펀딩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아래 버튼을 클릭해서 살펴보시죠.
저희가 『삼국지』와 맺은 인연도 벌써 오래 됐습니다. 나관중의 『삼국지』도 2019년에 전6권으로 번역본을 냈지요. 모종강 평이 달린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 『정사 삼국지』와의 비교를 통해 『삼국연의』가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들은 역자가 정사의 해당 대목을 본문에서 제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2018년에 이중톈의 『삼국시대』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중톈은 두 가지 이유에서 삼국시대에 부정적입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들이 별로 없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이 시대의 역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 전에 계啓가 선양禪讓을 폐지한 것이나 서주의 봉건제, 진나라의 천하통일보다 못할 뿐만 아니라 그 후의 오호五胡의 전란보다도 못하다. 그러니 백가쟁명은 더더욱 감히 넘보지 못한다.” 두 번째는 『삼국연의』에 대한 반감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죠. “사실 모든 정치투쟁은 근본적으로는 다 이익을 둘러싼 투쟁이다. 이익을 다투면서 ‘의義’를 얘기하는 것은 허풍과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위선’이다. 이것이 바로 『삼국연의』의 병폐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류짜이푸의 『쌍전雙典』이 있습니다. 2012년에 나온 이 책은 『삼국연의』와 『수호전』이 중국 사람들의 심성을 갉아먹었으며, 특히 아이들이 읽으면 안 된다고 강변하는 책입니다. 두 책을 고전 대접은커녕 호환 마마 취급을 하고 있는 평론서입니다. 중국어 원제는 ‘쌍전 비판’입니다. 공감이 가는 대목도 많았지만 지나친 부분도 없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추계예대 동양화과 박순철 선생님의 그림을 살짝 보여드립니다.
아무튼 이 ‘삼국’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는 글항아리가 『정사 삼국지』에 「배송지 주」까지 얹어서 내놓음으로써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주춤주춤 애매하게 그 인기 위에 올라탔다가 다시 내려와 말고삐를 제대로 쥐고 서게 되었네요. 역사는 역사이고 문학은 문학이고 갈무리는 각자가 알아서 해야겠지요.
사실 중국 역사에서는 아직 우리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시대들이 많습니다. 그 빈 곳을 글항아리는 추구하고 있습니다. 바로 삼국시대와 이어진 부분, 앞에서 이중톈이 “오호의 전란”이라고 표현한 위진남북조 300년의 역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마천의 『사기』가 선진시대와 전한시대까지를 포괄하고, 『삼국지』가 후한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를 포괄한다면 수당시대로 넘어가기 전까지 분열과 혼란의 도가니였던 이 300년의 역사는 어떤 책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년 초에 이 시대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선보입니다. 리숴李碩라는 뛰어난 역사학자이자 정말 남다른 이야기꾼이 쓴 책입니다. 2024년에 『상나라 정벌』이라는 책이 나름 화제를 모았는데 바로 그 저자입니다. 첫 책 『남북전쟁 300년』은 진나라 통일 이후 분열·할거 국면이 가장 심각했던 위진남북조 시대에 초점을 맞춥니다. 저자는 전쟁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호胡와 한漢의 종족 간 차이, 남북 지역의 차이 같은 특수한 배경 아래에서 진행된 전쟁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탐구를 진행합니다. 이 문제들은 사마천司馬遷에서 사마광司馬光에 이르기까지 역사가들이 모두 중시하지 않았던 부분입니다. 책은 세 가지 관점을 취합니다. 첫째, 병과(기병·보병 등)와 그 군사 장비가 지닌 전술의 발전이 갖는 상관관계를 밝히는 것으로, 선진先秦 양한兩漢 시기의 전사戰史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둘째, 이 시기 남북 사이에서 발생한 몇 가지 표준적인 전쟁의 예를 통해 전략 문제와 전쟁 중의 각종 복잡한 요인(지리 환경, 군사 기술, 통솔 능력 등)의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셋째, 전쟁 자체와 각 행위 주체(정권)의 관계를 분석했는데, 여기엔 전비와 재정 문제, 정권 운용에 미친 전쟁의 영향 등에 대한 논의도 포함돼 있습니다. 분량도 많고 전거도 많지만 관심 있는 분들은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남북전쟁 300년』
『전쟁의 신 유유』
두 번째 책은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춥니다. 남조 송나라(420~479)를 건국한 송 고조 무황제武皇帝 유유劉裕(363~422)의 일대기를 다룬 책입니다. 제목이 『전쟁의 신 유유』입니다. 제가 『남북전쟁 300년』을 교정보면서 이 유유라는 인물의 놀라운 면모를 파악하고 놀랐는데, 저자 또한 이 300년의 시간에서 그만을 별도로 건져 올려 따로 한 권의 단행본을 집필한 것이니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알 만합니다. 말단 관료의 장남으로서 빈한한 농민 겸 거친 노름꾼 생활을 경험했던 무식한 사내가 35살에야 군대에 하급 장교로 들어가 승승장구 끝에 동진 왕조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에 오르고 결국 나라를 건국하게 된 과정이니 스토리 자체가 흥미롭고, 구체적인 전쟁에 대한 묘사는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이 두 권의 출간으로 위진남북조 시대가 위진현학이니 죽림칠현이니 하는 문화적 규정에서 벗어나 정통 생존 서사로 독자의 마음에 남을 수 있길 기대합니다. 배송지가 유유의 신하(배송지에게 『삼국지』에 주를 붙이라고 명을 내린 사람이 유유의 셋째 아들인 송 문제입니다)이기도 했다는 소소한 인연도 있어 『정사 삼국지』를 펴낸 김에 약간의 예고편을 말씀드려보았습니다. 책들에 둘러싸이기 좋은 연말이네요. 모쪼록 따뜻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