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개달리기”라는 원고 투고함의 메일 아이디를 봤을 때가 떠오른다. 1년 6개월 전이다. 『일본백명산』번역을 완료하여 출판사에 투고하면서 보낸 역자의 메일 닉네임이었다. “저게 무슨 말일까?” 궁금했지만 그때는 물어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책이 나오고 엊그제 통화할 때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다. 그건 어렸을 적 하던 놀이였다. 고무 대야에 칸을 여러 개 만들고 자기가 원하는 칸에 물방개가 들어가면 당첨이고 안 들어가면 꽝인 그런 놀이였다. 역자는 그 놀이에서 물방개가 사람으로 보였다. 사람이 의지만 가지고는 안 되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 바깥에서 조정하는 힘이 있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고, 노력한 만큼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닉네임으로 삼았다고 했다. 책을 내기로 결심하고, 서울 을밀대 식당에서 마주 앉았을 때 역자의 모습은, 포기할 부분은 다 포기했지만 마지막 보루는 지키겠다는 의지를 가진 모습처럼 보였다. 이러저러한 말끝에 구체적 편집 회의를 하면서 독특한 견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가령 일본어 표기 원칙이 독특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오오”로 발음되는 “大”는 보통 “오”로 줄여서 표기한다. “오오사카”라 하지 않고 “오사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단어들을 “오오”라고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원래 “오”로 표기하는 다른 한자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 100개의 명산을 다루는 책이다. 산이나 지명에 “오오”가 좀 많이 들어가겠는가. 골치가 지끈해졌다.(최종적으로는 “오”로 합의봤다.) 또 하나는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순우리말 단어들을 참으로 많이 사용하셨다. “지짐거리던 날씨” “선뜻 벗개어서” “몇 갈래로 줄드리고” “넓은 높게더기” “사력이 서벅거리는” 등이었다. 정감 있고 운치를 살려준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지나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역자의 변 앞에서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 현상을 표현하는 말은 나라마다 고유어가 발달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옛사람들처럼 날씨의 추이나 지형의 변화를 다양하게 경험하고 섬세하게 묘사할 일이 줄어들어서 그에 관한 표현들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등산을 다루는 글에서는 빠트릴 수 없는 요소다. 그와 관련된 잊힌 우리말을 먼저 수집해놓고 우리의 산과 일본의 산을 올라본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게 채택했다.”(10~11쪽)
이와 같은 정성과 섬세, 고집과 투지가 이 번역서의 전반을 관통한다. 원서는 고작 260여 쪽이지만 한국어판은 780쪽이니 말 다했다. 원서에는 없는 수백 점의 사진, 원문의 분량을 몇 배는 넘어설 역주, 깨알 같은 백명산 위치도, 일본 구국명舊國名 지도, 오기팔도五畿八道, 엄청난 분량의 일러두기, 몇 가지 버전의 찾아보기(페이지 넘버링 작업도 역자가 직접 했다), 심지어 한일 통용 한문의 생김새가 서로 다르다고 자체字體를 비교한 부록까지 실어놓았다. 아주 긴 역자 서문과 그보다 더 긴 역자 후기가 있다. 그래서 책 뒤표지 카피 문구에서 나는 “끝 간 데까지 번역의 완벽성을 추구하면서 원저의 진액을 뽑아냈다”라고 써버렸다. 책에서 진액을 뽑았다는 표현이 내 생전에 다시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역자는 전문 연구자도 아니다. 그냥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뮤지션으로 오래 활동했고 지금도 관련해서 일이 있는 눈치다. 그리고 등산 애호가다. 번역서 경험도 있다. 근대 등산에 관한 논문도 몇 편 쓴 것 같다. 프로필만 봐서는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완벽주의자였다.
다만 그 완벽주의의 품이 넓었다. 작업이 끝나고 나니 알겠다. 그래서 이 책을 보는 독자들은 역자의 작업 내용에 놀라면서도 구석구석 부드러움이 넘쳐난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된비탈의 숨 가쁨이 없지는 않지만 흙산의 폭신함과 선의 유려함을 잊지 않고 있다. 가장 어려운 종류의 완벽함은 다른 것들을 균형감 있게 아우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본문 미리 보기
저자 후카다 규야는 소설가로 출발해 운명의 장난에 휘말려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낸 인물이다. 다행히 그에겐 산이 있었고 산을 오르며 고통을 흔적으로 간직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반갑듯이, 그리고 운명처럼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듯이, 예사롭지 않은 사람끼리 조우하여 번역본이 탄생했다.
『일본백명산』이 출간된 지 60년이 지난 뒤에야 임자를 만난 것은 번역하기가 무척 까다롭기 때문이다.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며 ‘달제獺祭’를 지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달제란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제사 지내듯 사방에 벌여놓는다”는 뜻으로, 시문詩文을 지을 때에 많은 참고서적을 벌여놓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즉 찾아보고 참고해야 할 사항이 자갈처럼 굴러다니는 책이다.
산악인들 사이에서 이 책은 늘 화제의 중심이었다. 김영도 선생님(1924~2023)은 역자가 속한 모임의 원로로 1970년에 시작된 전국 35개소 산장 건설을 주도했고,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대장, 1978년의 북극 탐험대장 등을 지냈다. 이후 한국등산연구소를 설립해 구미의 여러 등산서를 번역하고 등산사를 연구했다. 철학을 전공했던 선생은 캠퍼스가 있었던 대학로와 커피를 좋아하셔서 가끔 그곳에서 역자와 만났다. 어느 날 역자가 선생에게 여쭈었다. “걸작으로 꼽는 일본의 산서는 무엇”이냐고. 이렇게 질문한 이유는 선생이 일본어를 국어로 배운 세대이고 근대 일본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기 때문이다. “『일본백명산』이 그 백미”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선생님이 번역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청해보았으나 “말맛을 내기가 워낙에 어려운 책이라서……”라고 하셨다.
위. 이와오베쓰 앞바다에서 바라본 라우스다케와 미쓰미네 | 아래. 라우스다이라와 미쓰미네
번역은 돌고 돌아 어느 날 시작된 이 책의 원서 윤독회에서 역자의 몫으로 떨어졌다. 과정이 보통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산에 관한 수필이지만 특유의 고어와 문체가 있고, 문사철도 예사롭지 않게 녹아 있다. 게다가 압축적이다. 저자는 편당 400자 원고지 5매라는 원칙을 지켰다. 역자는 이걸 하나하나 다 풀어헤쳤다. 그러면서도 원서의 품격을 해치지 않아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무사히 하산했다. 옆에 엄청 두툼한 책을 끼고. 자신은 죽을 고생을 했지만 독자에게 전하는 목소리는 산들바람 같다. “숲 내음에 둘러싸여 새 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거닐려는 사람들에게 속삭이는 책”이라든지. “산에 가지 않더라도 일본 열도라는 긴 갤러리에 전시된 명산의 큐레이션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라든지.
일본이라곤 몇몇 도시만 가보았고, 후지산조차 보지 못한 나 같은 편집자에게는 이 책이야말로 일본의 산악 자연을 초등하는 기분으로 맞닥뜨릴 수 있는 신비한 체험을 제공해줬다. 게다가 어원에 서린 옛사람들의 삶이나 지역 풍물을 캐내는 ‘산명고山名考’라는 형식도 내 취향에 부합했다. 비록 엄청나게 비싼 책이긴 하지만, 자연인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명품 하나 들여놓는다는 생각으로 장만하시길 권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