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서울에서 청두를 거쳐 티베트 라싸로 가려던 우리 일행은 경유지인 청두에서 발이 묶였습니다. 갈아탈 비행기에 새가 부딪히는 바람에 하루 연착된 것입니다. 일행 네 명은 직전 직장 동료였고, 백수여서 남는 게 시간이었습니다. 뜻밖의 낯선 도시의 일정이 반가워 청두의 한 재래시장을 구경하다 놀라운 광경을 봤습니다. 비둘기가 닭장에 들어가 있었죠. 중국인들의 무시무시한 식재료 몇 가지를 구경했습니다. 손질해놓은 자라라든지, 기어다니는 벌레 비슷한 것들. 시장의 그 은은한 피 냄새를 피해 저녁을 먹으러 호텔 근처 식당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두 중국어를 못했기에 우린 손짓을 해가며 이거저거를 시켰는데 주문을 받는 분 표정이 “정말? 괜찮겠어?”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한 아름 큰 접시에 양쯔강 잉어처럼 생긴 거대한 생선이 한 마리 실려왔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냄새가 코를 강타했습니다. 국물에 빠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기름이었습니다. 먹을 엄두도 내지 못했죠. 우린 대강 먹는 척하다가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싸는 청두보다 더 심했습니다. 모든 음식에서 오래 안 씻은 몸의 고약한 비린내가 나서 괴로웠고, 야크 육수 국수를 먹다가 게워낼 뻔했습니다. 6박 7일의 일정 내내 저는 “boiled potato”만 먹었습니다. 비위가 상한 나머지 여행 후 재보니 6킬로그램이 빠져 있었죠.
제가 낯선 음식을 기피하게 되는 건 재료와 향 때문입니다. 재료는 우선 ‘종種’과 ‘부위’로 나뉩니다. 평소에 먹지 않는 건 우리가 보통 생명으로 대하죠. 귀여운 염소라든지, 낙타라든지. 그리고 발이니 고환이니 하는 요리를 도대체 왜 만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냄새는 또 어떻고요. 베이징 첫 출장에서 강한 향신료를 피해 KFC에서 햄버거를 시켰다가 좌절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 안에 들어간 패티에서 특유의 냄새가 진동을 했거든요.
우연한 계기로 저는 이런 거부감에서 탈출했습니다. 출판계 지인들과 회식 후 3차쯤에서 서울 연남동의 늦게까지 문을 연 중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밑반찬으로 고수가 나오더군요. 중국에 출장 갈 때마다 부야오 샹차이(고수 빼주세요)를 외치게 했던 그 ‘웬수’가 눈앞에 있는데 왠지 싱싱해 보여서 크게 집어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습니다. 술의 힘이란. 웬걸,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접시를 더 달라고 했죠. 이후 고수는 베트남 식당에서나 마트에서 사와 집에서도 먹는 애정하는 식재료가 되었습니다.
잡설이 길었네요. 오늘 소개드릴 책 『웍과 칼: 중화미식인류학』을 접했을 때 제 머리에 입력된 것은 쓰촨 요리를 제대로 다룬 책이라는 정보였습니다. 편집하다보니 저자가 쓰촨에서 요리를 배우고 익힌 건 맞습니다만 중국 요리 전반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역자가 붙인 부제 “중화미식인류학”이라는 말이 들어맞습니다. 30년간 중국 곳곳을 다니며 칼을 쓰는 사람, 불을 다루는 사람, 콩을 가는 사람, 간장을 졸이는 사람, 햄을 말리는 사람 등과 교류하며 진지하게 지역의 풍토와 연관시켜 연구했으니까요. 여기서 연구는 ‘연구硏究’이면서 동시에 ‘연구軟口’이기도 합니다. 입을 부드럽게 하는 거죠.
앞서 말씀드리기도 했지만 입은 보수적입니다. 익숙한 것에 맞춰 딱딱하게 굳어 있죠. 피시앤칩스의 나라인 영국인인 저자는 온갖 중국 요리를 맛보며 입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중국 요리는 재료에만 놀라움이 있는 게 아닙니다. 발효보다는 썩은 것에 가까운 온갖 ‘취臭’ 요리 앞에서, 무한한 조합 앞에서, 온갖 만들어낸 모양 앞에서 저자는 무력감을 외칩니다. “중화요리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는 프랙털 패턴과 같아서 무한해 보이기도 한다. 더 많이 알아갈수록 내 무지의 크기를 깨닫는다. 중국 음식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인간의 독창성이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는 작은 벌레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제가 책을 보면서 가장 입맛을 다신 것은 요리과정이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진미珍味’류보다는 시골 사람들이 먹는 순한 음식들이었죠. 이 책엔 그런 부분이 충분히 강조되어 있습니다. 식치食治가 완벽히 민간의 일상식으로 구현된 모습에 대한 묘사는 신비롭고 감탄스러운 면모가 넘쳤습니다. 그런 ‘연구’ 과정을 거쳐 저자는 “내 입맛이 거의 중국화되었음을 깨달은 시점은, 사람들의 상상과는 달리 닭발과 해파리를 즐기게 된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흰죽과 데친 야채도 함께 즐기게 된 순간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이 책의 원제는 ‘만찬으로의 초대Invitation to a Banquet’입니다. 이 제목에는 사실 저자 자신의 고향 음식이 단순하다는 고백이 깔려 있습니다. 매일 먹는 것이 정해져 있는 사람이 매일 먹을 것이 바뀌는 나라의 음식에 적응하는 과정이 이 책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는 묘미가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고체에서 액체로, 단맛에서 매운맛으로 가는 ‘맛의 방향’이랄까요. 그걸 인지하고 읽어야 영국이라는 렌즈를 통해 중국을 보는 묘미가 느껴지실 겁니다. 가령 국물에 대해 “황금색 미스터리와도 같이 이들을 감싸고 있는 액체, 이들의 정수와 기와 생명력을 빨아들인 물”이라며 찬탄하는 장면들도 제법 나오거든요.
우리는 이 제목을 ‘웍과 칼’로 바꾸었습니다. 물론 역자분들의 아이디어죠. 저도 이 제목이 좋습니다. “중국인이 된다는 것은 먼저 칼에 의해 변형된 다음, 불에 의해 탈바꿈된 음식을 먹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제 눈에는 웍과 칼이 바로 수천 년의 적응과 변화의 응축된 결과물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