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본 책의 두 번째 글을 발행합니다. 묵직한 원서와 번역 원고를 받아 들자 낯익은 이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피에 젖은 땅』의 저자 티머시 스나이더 추천, 같은 책의 역자 함규진 선생님 번역. 찾아보니 앤 애플바움의 다른 저서가 국내에 몇 권 소개되었지만 익숙한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초교를 본 편집자는 제게 원고를 인계하며 질문했습니다. ‘쿨라크’와 ‘굴라크’가 어떻게 다른지 아느냐고요. 이제 와 생각하는 거지만 이 책을 꿰뚫는 질문이었습니다. 『붉은 굶주림: 우크라이나 대기근, 기획된 종말』은 우크라이나 농촌에서 부농(쿨라크)으로 분류된 이들이 어떻게 강제 수용소(굴라크)로 일거에 징집되었는지 추적하는 책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앤 애플바움은 이 책이 1917년부터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 혁명이 일어났던 해이고 앞으로 전개될 우크라이나 민족 말살 정책의 암울한 전조가 엿보인 해입니다. 앞서 받은 질문을 띄운 채로 1917년 우크라이나 혁명에 대해 읽으며 원고를 넘겼습니다만, 제게 이 책이 ‘시작’한 곳은 그 질문도 혁명의 복판도 아니었습니다. 제게 이 책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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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원고의 3분의 1 지점에 삽입된 사진입니다. 왼편에서 사진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남자. 흐릿한 사진이지만 동양인으로 보이는 이 남자를 자주 떠올리게 된 그날부터 이 책이 활자를 뚫고 일어섰습니다. 편집을 막 시작하던 즈음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때문이었습니다. 평범한 불면의 밤, 불도 끄고 누워서 설렁설렁 보다가 잠들 셈으로 튼 다큐멘터리였습니다. 2016년에 방영된 「청춘, 사라진 100년 그들의 목소리」는 1917년 3월 22일 독일 뮌스터 포로수용소의 기록물을 다룹니다. 저는 곧이어 자세를 고쳐 앉아야 했습니다. 당시 자행된 인종 실험의 기록물 중 고려인 안스테판, 김그레고리, 유니콜라이 등 포로 여섯 명의 음원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연해주에 살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 징집되고, 전후 독일 포로수용소로 잡혀간 고려인들이었습니다. 익숙한 가락의 아리랑이 흘러나올 때는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기록의 파편을 이어붙이자 어렴풋한 실체나마 확인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나와 닮은 얼굴을 하고 같은 언어를 쓰는 이들이 거대한 역사에 휘말려들었다는 것만이 ‘왜’ ‘어째서’와 같은 질문으로 변주돼 떠오를 뿐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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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봄에서 여름 내내, 스탈린은 우크라이나 공산당 간부들로부터 다급한 메시지를 받습니다. “존경하는 스탈린 동지와 소비에트 정부의 법률은 이 마을 사람들에게 굶주림을 의무화하고 있습니까? 굶주림에 시달리는 게, 우리 아이들이 배를 곯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게 어떤 보탬이 되는지요?” 부르짖는 편지는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1932년 가을, 소련 공산당 최고 지도부는 우크라이나의 기근을 확대·심화하는 일련의 결정을 내립니다. 곡물 징발을 유지하고, 징수 할당량을 확대하고, 우크라이나를 봉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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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까지는 반쪽짜리 이야기입니다. 농촌에서부터 일던 민족운동 세력이 숙청당하고, 공동체의 전통과 종교가 파괴됐습니다. 두 줄기 거센 물살이 휩쓸고 지난 자리에 우크라이나 민족과 문화는 남아나지 못했습니다. 최악까지 가지 않을 기회가 몇 차례나 있었지만, 번번이 저버렸고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1931년부터 1934년까지 소련 전역에서 최소한 500만 명이 굶어 죽었고, 그들 가운데 우크라이나인이 390만 명이었습니다.
앤 애플바움은 질문합니다. 1917년에서 1934년까지 우크라이나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특히 1932년에서 1933년 사이의 가을과 겨울에는? 어떤 사태의 연쇄가 또 어떤 감성이 기근을 초래했는가? 누구의 책임인가? 그의 질문 중 저는 ‘감성’이라는 두 글자 앞에 멈춰 섰습니다. 이 처참한 파국이 감성을 실마리로 삼아 풀 수 있는 문제일까요. 역사는 지금-여기의 감성과 어떻게 공명할까요. 감성이 거대한 역사에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면, 그 틈을 통해 어떤 역학 또는 화학작용이 출현할까요. 편집을 하다 부지불식간에 이 질문에 가로막히면, 저는 원고 뭉치를 훅 넘겨서 사진으로 돌아왔고, 이쪽을 건너보는 남자를 마주 봤습니다.
사진 속 장면은 우크라이나 농촌에서 부농의 재산이 강탈되고 경매로 부쳐지는 모습입니다. 남자는 누구일까요. 우크라이나 곡물 징발을 위해 러시아에서 온 활동가일까요. 민심이 강퍅해진 농촌 마을에서 경매에 참여한 이웃일까요. 고려인일까요. 어쩌면 나와 아무런 관계없는 뭇 사람이라 여기는 게 합리적일지도 모릅니다. 자꾸 여기로 돌아와서 사진을 들여다본대도 알 수 있는 것은 없고, 저 역시 탐정을 자처하려던 것도 이들을 판가름하려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무관해 보이던 세계가 이어져 있다는 느낌, 일종의 기시감에 등 떠밀린 행동이었습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피란민 876명이 광주 고려인마을로 입국했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고려인, 러시아, 광주……. 한데 나열될 수 없을 것 같던 단어들을 이어 적으며 저는 어렴풋이 애플바움의 질문에 제 나름의 답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민족을 멸종시킨 대기근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전에 최초의 작용과 결심이 있을 터입니다. 거기에 감성이 끼어들 자리가 있느냐 묻는다면, 저는 감성은 언제나 불시에 마주친 두 눈에서 시작해 연쇄를 촉발해왔다고 말하겠습니다. 그 일이 제게는 단 한 장의 사진에서부터 일어난 거겠죠. 여러분이 이 책을 읽을 때 이 글 또한 어떤 연쇄의 하나로서 불을 점화하길 바라봅니다. 일말의 감성이 결국 모든 이야기의 시작, 역사의 시작에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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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굶주림: 우크라이나 대기근, 기획된 종말』
앤 애플바움 지음, 함규진 옮김 (8월 출간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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