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본 책의 열네 번째 이야기를 보냅니다. 윌리엄 위버는 이탈리아 문학을 영어로 50년 이상 옮겨온 번역가다. 움베르토 에코, 조르조 바사니, 이탈로 칼비노가 모두 그의 문장을 통과해 영미권 독자들에게 읽혔다. 그는 번역을 뭐라고 생각할까. “번역은 공연 예술이에요. 사실 번역할 때 저는 가끔 단어를 몸으로 표현해봐요”(2002년 윌러드 스피글먼과의 인터뷰 중). 그는 단어를 조합하는 일에는 신체 감각이 동원돼야 하며, 번역어를 고르는 핵심 기술은 “소리, 속도, 리듬을 제대로 잡는 것”이라고 여긴다.
에세이나 비평은 어떨까. 특히 텍스트 비평이 아닌 공연 비평이라면? 공연에 대한 글이라면 그 매체와 가장 닮은꼴로 쓰여야 효과를 제대로 낼 것이다. 연기자가 무대의 공기를 씹어 먹는 모습이 그려지고, 그의 압도적 아픔이 내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육체적으로 소름 끼치는 모습이 나의 영혼을 갉아먹고…….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고 이후 연기자가 되어 영화, 드라마, 연극의 배역을 모두 제 몸속에 심으려 하는 김신록 배우는 이런 글쓰기의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아우라를 걷어내고, 때로는 납작하게』를 먼저 읽어본 편집자의 느낌은 이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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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 후: 연기만큼 글쓰기 재능도 뛰어나다.
2교 후: 삶과 연기가 아교로 접착되어 떨어지지 않는다.
3교 후: 글쓰기가 마치 무대 연기 같고, 문장이나 문단이 연출적 기법에 매우 충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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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 글들은 신체 감각으로부터 발원한 ‘소리, 속도, 리듬’을 문학적 미학에 충실하게 변환시켜내고 있다.
1부는 에세이고, 2부는 비평이다. 일상에서 시작하는 에세이는 광주에 사는 엄마랑 통화하며 제발 오래된 욕실 수건은 버리고 새걸로 바꾸라는 내용, 부엌 바닥에 앉아 냉장고를 열고 오래된 갈치며 우유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는 장면, 부산에서 어묵을 사들고 와 비 오는 서울역 앞에서 택시를 겨우 잡는 장면을 묘사한다. 하지만 일상을 그대로 늘어놓는 건 작가에게 금기 사항이다. 진부함은 예술가에게 패배의식을 심어주므로 김신록은 이것을 예술로 승화시킬 방법을 찾고자 집 바깥으로 나간다.
휘슬 갤러리에 들어선다. 이양희의 공연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안무가의 혼을 빌려 내 몸을 들여다보고, 내 일상이 어떻게 하면 예술로 바뀔 수 있을까를 탐구한다. 몸은 은유를 소화하면서 그것을 파편처럼 박아넣는다. 그리고 김신록은 그걸 다시 글로 써서 문학의 형식으로 배출한다. 바로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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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휘슬 갤러리 이양희의 퍼포먼스. ©휘슬 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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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는 소설을 출간할 때 편집자가 쉼표 하나 추가 못 하게 할 정도로 ‘정확성’에 신경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김신록의 글도 미학적 특질이 강해 어떤 정보가 들어가는 순간 글을 망친다. 처음에 나는 저자가 사진가 이훤의 「공중뿌리」를 언급했을 때 ‘베르탁, 2025’를 삽입했다. 장소와 시간은 디테일 중 하나이고, 편집자는 언제나 팩트를 체크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작 몇 글자 넣었는데도 이는 글의 흐름을 끊고 리듬을 헝클어뜨렸다.
‘와’ ‘과’와 같은 접속조사를 사용하지 않고 주격조사를 동일한 동사에 반복해 연결시키는 건 저자의 특징이다. 왜 문장을 이런 식으로 쓸까 생각해보았다. 그는 배우다. 그러니 언제나 각각의 주어를 동사와 또렷이 연결 지으려 하고, 그 속에서 그 명사들은 구체성과 생명력을 얻게 된다. 모든 배역에 행위를 부여하듯, 접속조사로 싸잡기보다 각각의 행동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신록의 글은 ‘연기를 통과하는 글쓰기’라고 부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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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통과하는 읽기.
『아우라를 걷어내고, 때로는 납작하게』 김신록 지음 | 8월 출간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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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는 ‘제4의 벽’이라는 것이 있다. 무대의 뒤, 왼쪽, 오른쪽 면을 세 개의 벽이라고 하면, 관객을 향해 있는 앞면이 바로 제4의 벽이다. 원고를 마감할 때의 김신록은 사면이 모두 벽으로 막힌 책상에 앉아 있고 싶어한다. 그때는 글쓰기에 실패하면 패배감이 들므로 바깥과 온전히 차단되어야 한다. 하지만 무대 위로 올라서는 순간 그는 전면의 벽을 지워내고 삼면의 무대 속에서 관객을 마주한다. 그에게 글쓰기가 사방이 막힌 방에서 단어를 응축하는 일이라면, 연기는 숨겨져 있던 네 번째 벽을 열어젖히며 세상을 향해 온몸으로 방출하는 행위다.
이 두 가지를 거의 온전히 해내는 인물은 몹시 드문데, 『아우라를 걷어내고, 때로는 납작하게』에서 김신록이 보기 좋게 해낸다, 삶의 진실한 조각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글들 속에서 영감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극장 공연 후 트레이닝복을 입고 뒷문으로 나와 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 먹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볼 수도 있고, 단단한 마음과 강한 멘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규모 예산과 서로의 인정욕구가 포화된 영화 현장에서 빠져나와 순수한 이들을 만나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도 읽을 수 있다. 그 사소하고 소소한 일상은 그러나 형식 면에서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학성을 담보해 다시 한번 일상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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