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패터슨의 책은 일종의 리듬을 타고 있다. 자유가 컴컴한 흙 밑에 묻혀 짓밟히는 소리, 발의 압력과 경멸을 견디다 못해 움을 틔우는 소리가 페이지 도처에서 들려온다. 자유는 관념 혹은 사상일까? 아니다, 그것은 노예의 굴레에 갇혀본 자만이 품을 수 있는 욕망이다. 나 자신에게 그런 경험이 없다면, 옆의 비천한 여성을 보고는 내 처지도 저렇게 굴러떨어질 수 있다고 겁먹는 자만이 소망할 수 있는 가치다. 노예들은 또한 마음의 소리만 낸 것이 아니라 머리에 인식이란 걸 지고 다녔다. 신 혹은 빛을 향한 인식을.
베버의 지적 계보를 잇는 유일한 인물이자 우리 시대 마지막 사회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올랜도 패터슨의 『자유의 역설』에는 제사題詞가 세 개 실려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스토아학파의 잠언, 그리고 신약성서 「갈라디아서」 속 구절이다. 이 세 문장이 갖는 의미는 책을 다 읽고 난 뒤라야만 손에 잡힌다. 플라톤의 사상에 수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는 데다 철저한 자료 섭렵과 논증으로 뛰어난 학술 성과를 이룬 이 책은 그러나 ‘감정’과 ‘영성’ 없이는 자유를 손에 넣는 데 실패할지 모른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렇기에 저자는 박코스 여신도들의 광기와 그녀들이 주저앉아 내뱉는 통곡, 에픽테토스의 핏속에 끓고 있던 노예의 굴종적 경험, 그리고 예수보다 더 혁명적이었던 바울의 편지글을 첫머리에 새겨넣었다. 치밀한 논증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이 실은 그 논증과는 별로 닮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지난 몇 달의 시간을 한 단어로 축약하라고 한다면, 내게는 단연 ‘올랜도 패터슨’이다. 플라톤보다는 소피스트들과 에우리피데스에게, 세네카보다는 에픽테토스에게, 예수보다는 바울에게 마음을 더 주는 그는 사실 기독교인이 전혀 아니다. 하지만 지성이 아닌 영성이 자유를 안겨줄 것이며, 노예의 감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여성들이 인류에게 자유를 부여해준 주역임을 그는 알고 있다. 남자들도 자유를 갈구하긴 한다. 그러나 그건 언제나 다른 사람을 내 뜻대로 부릴 수 있는 자유였던 반면, 여자는 태생적으로 나도 저 여자 노예처럼 부서지고 내려앉고 강탈당할지 모른다는 연약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하는 이 책의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뒷부분의 소략한 중세 파트는 제쳐두고) 사도 바울로 끝맺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는 중세를 암흑기로 보지 않고 자유의 연대기 속에서 복원해냈을 뿐 아니라 바울에게 이미 근대 자유 사상의 씨앗이 심겨져 있음을 밝혀낸다. 멀리 로크까지 나아가거나 혹은 로크로부터 자유의 역사를 시작할 이유가 그에게는 하등 없었던 것이다. 학창 시절 자유의 효시가 존 로크라고 배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경로는 뜻밖의 것인데, 그건 바로 패터슨의 핵심 사상이 기존의 학설들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자유는 부르주아 시민 계급의 것도 아니고, 계몽주의 지식인들의 사상 속에서 창안된 것도 아니다. 자유는 노예들의 몸과 마음에서 생겨났다. 굴종해본 적 없는 몸은 자유를 갈구하기 어렵고, 그런 개념을 생각해낼 이유도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명예이고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에는 노예들의 검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자유는 사실 단일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이 책은 자유를 삼화음으로 나누는데 개인적 자유, 주권적 자유, 시민적 자유가 그것이다. 계층/계급마다 다른 둘에 비해 어느 한 자유의 음조를 높이고자 분투했는데, 가령 자유민 신분의 남성들은 주권적 자유만을 추구했던 반면, 노예들은 개인적 자유를 원했다. 이 세 개의 음은 조화를 이룰 수도 있었겠지만, 불협화음을 내는 일이 더 흔했다. 그럴 때 노예나 여성처럼 약한 자들은 영적 자유에서 진정한 개인적 자유를 발견하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