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두 번째 책은―그가 누구든 거의 예외 없이―긴장도가 높다. 첫 책이 신인의 등장을 알렸다면, 그다음 책에서는 이미 기성 작가가 된 그가 자신의 존재 가치 혹은 비교우위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 출발에는 격려와 호응이 뒤따른다. 우리가 탄생을 흔히 축복으로 여기는 이유다. 두 번째부터는 주시하는 눈빛들이 사위를 에워싼다. 독자는 이제 자신이 가진 잣대를 객관적인 것으로 여기면서 산술적 셈법을 보이곤 한다.
한편 작가 입장에서는 첫 책보다 두 번째가 자기 자신을 훨씬 더 내밀하게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갈지자로 걸어온 지난 세월에 통일성을 입혀 펴낸 것이 첫 책이기에, 거기서 떨어져 나간 부스러기들에 오히려 진짜 내 삶이나 관점이 담겨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다수의 저자는 두 번째 세상을 구축할 기회를 얻으면 더 깊고, 더 힘 있게 뻗어나가려 한다.
김유태 작가의 두 번째 산문집은 『밤과 책』이다. 첫 책 『나쁜 책』이 금서기행이었다면, 『밤과 책』은 영화탐문이다. 금서기행은 인과관계 그리고 대립 구도로 짜여 있다. 금서는 대개 억압하는 국가와 사회, 역사가 발생시킨다. 가장 큰 구조들이 가장 섬세하고 미세한 문학으로 침투해 문장들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이다. 큰 것과 작은 것, 현실과 픽션 간의 대립을 드러내는 『나쁜 책』은 추방과 도주, 살해에의 위협 등 극적인 현실의 사건과 순수 텍스트를 동시에 펼쳐 보인다.
반면 『밤과 책』은 영화 그리고 그것의 원작이 된 문학을 병치시켜 스며들게 하는 시도다. 픽션과 현실의 충돌 및 불화를 다룬 앞의 책과 달리, 이 책은 예술과 예술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상승작용이 어느 정도까지 이를 수 있을지를 가늠케 해준다. 저자가 쥔 도구는 오직 ‘비교’밖에 없다.
갇힌 구조 안에서 비교로써만 승부를 보려는 시도. 여기서 다루는 스물세 편의 작품 외에 다른 책과 영화가 참조물로 언급되는 일은 없다. 폐쇄성은 작품 내부에서만 이를 끝까지 읽어내겠다는 의지로, 밀도를 높인다. 스물세 편의 작품은 바깥과 차단되어 있다. 오로지 영화와 원작의 당기고 밀어내는 구심력과 원심력만이 저자에 의해 발견되고, 저울질되고, 서로의 구멍을 메우며 앞으로 나가는 추동력을 얻는다.
영화와 문학, 두 장르의 비교는 덧셈이나 뺄셈과 관계없다. 이 책은 욕망을 살찌운다. 텍스트 너머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 스크린 너머에서 진실과 조우하려는 욕망. 이 비교는 사물의 핵심에 가닿고자 하는 나선형의 행보를 보인다. 그것은 결국 저자가 자주 쓰는 낱말인 ‘심연’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밤과 책: 영화탐문』 표지를 살짝 공개합니다.
도서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최초로 선보입니다.
스물세 편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각 글에는 글쓴이의 내적 그늘이 어른거리고 있다. 인간의 죄 그리고 침묵하는 신에 관한 질문. 저자에게서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형이상학은 죄, 구원, 신에 관한 것이고, 그건 작품 해석에서도 독특한 관점을 확립시킨다. 「쇼생크 탈출」을 성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한 가지 사례다. 「더 로드」에서 무력감을 노출하는 떠돌이 신이나, 「어톤먼트」에서 정죄되어야 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신이어야 한다는 해석은 저자 안에 어른거리는 신을 향한 열망, 놓을 수 없는 그 무엇을 보여준다. 신은 글쓰기와 스크린을 통해서,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인식에 다가오려 한다. 그러나 그 신은 태초, 즉 근원과 관련 있기에 거기서 한 가닥의 계시가 비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스물세 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자기 삶을 하나의 운명으로 변형시켰던 이들이다. 그 운명은 극화劇化되고, 하나의 기호가 되며, 신화가 되었다가 신학적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가 창조해낸 소리와 빛의 이미지들은 『밤과 책』에서 결국 텍스트로 되돌아온다. 인간은 가장 근원적인 면에서 읽고 쓰는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