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본 책의 열 번째 이야기를 보냅니다. 편집자들이 회의 때 들고 오는 기획서는 다들 주제가 다르지만, 여태 가장 많이 나온 것은 ‘우정’이다. 20~30대는 사랑보단 친구 관계를 통해 삶을 발명하려는 욕구를 훨씬 많이 내비친다. 이들은 아마 소크라테스의 『향연』보다는 키케로의 『우정에 관하여』를 더 즐겨 읽을 것이다.
편집자 P는 어느 날 우정 시리즈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때 저자 후보로 오른 분은 『듣기의 윤리』를 쓴 김애령 교수였다. 이 책은 인용의 연쇄로서 한 권의 아름다운 연구서다. 역시 우정은 잘 듣는 데서 시작되고, 침묵까지 듣는 윤리가 정의의 환대로 향한다는 것을 이 책은 가리키고 있었다. 시리즈의 기획자도 아닌데 나는 이 책을 두 번 읽었고, P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탐스러운 국내 저자들은 언제나 대기 줄이 길고, 우리는 섭외에 실패했다. 그래도 낙담하지 않은 건 우리에게 서한나 작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퀴어인 그는 우정과 사랑을 종종 경계 없이 뒤섞곤 했다. 그의 우정은 질기디질겨 헤어진 연인과는 종종 친구로 지냈다. P가 편집한 서한나 작가의 책은 『드라마』로 출간되었다.
이후 P는 퇴사했다. 그리고 Y가 입사했다. 둘은 배턴터치를 한 것도 아닌데, Y는 들어오자마자 우정에 관한 기획서를 내밀었다. 우정에 관해서는 이미 탁월한 모리스 블랑쇼의 『우정』이 있기에 나는 큰 열정 없이 기획서를 검토했다. 하지만 원고를 읽으며 빠져들어 계약했고, 이건 4월에 『3. 바깥을 향한 열망』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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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문턱을 넘는 일이다. 자아의 문턱. 문턱이 닳아 없어져 타인의 세계로 나아간다. 하지만 틀에 박힌 관계나 대체 가능한 관계는 사양한다. 『랭스로 되돌아가다』의 저자 디디에 에리봉은 자기 바깥으로 빠져나와 푸코와 부르디외에게서 삶의 양분을 최대한도로 흡수했다(부르디외는 그에게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에리봉이 빨아들인 양분은 라갸느리와 에두아르, 두 젊은이에게로 흘러들어갔다(에리봉과 라갸느리는 연인관계이기도 하고, 에리봉과 에두아르는 사제관계다). 라갸느리에게 이 우정은 너무나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라 그는 셋의 이야기를 담은 책 『3. 바깥을 향한 열망』을 썼다.
“너에게 재능이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고 써. 하지만 책을 쓴다면 『구별짓기』나 『팔월의 빛』 같은 작품이어야 해.” 에리봉은 두 젊은 친구에게 이처럼 엄격한 관계의 조건(?)들을 생성시킨다. 쓸 것! 의심 없이 쓸 것! 재능이 없다고 여겨지더라도 어찌 됐든 탁월한 글을 써낼 것! 이 모순적인 난제 앞에서 두 젊은이는 결국 자신을 믿고 친구 에리봉을 믿어 훌륭한 작품들을 발표한다.
위의 에피소드는 이 세 사람 우정의 작은 조각일 뿐이다. 이들에게는 글쓰기도 중요하지만 “관계의 끈을 일상의 가장 평범한 층위에 새겨넣는 작업”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가령 셋 중 하나가 아프면 죽이라도 쒀서 싸다주고, 병원에 데려간다. 이들은 종종 세트로 움직인다. 에두아르의 소설이 연극으로 상연돼 아테네에 초청받은 적이 있었는데, 에리봉과 라갸느리는 셋이 함께 있고 싶어 바쁜 일정을 어떻게든 조정해 짐을 싸서 합류했다. 일상을 고양하고, 일상을 하나의 축제로 경험하게 만드는 능력, 이것이 이 세 친구에게는 매우 소중하다.
하지만 이 책은 개인적인 에세이가 전혀 아니다. 자기를 발명할 사회과학서로 읽히고, 키케로의 『우정에 관하여』를 대체할 철학서로 보이며, 또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에세이의 정수로도 감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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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을 통해 삶을 발명해가는 셋의 이야기와 함께 글항아리는 그 대척점에 있는 『살인자의 정신』도 내놓는다. 테드 카진스키. 열여섯에 하버드에 입학해 스무 살에 졸업한 천재. 그는 늘 혼자였다. 라갸느리를 비롯한 위의 세 사람도 책과 예술, 학업에 둘러싸여 있지만, 그들은 종종 셋이 하나가 되길 열망한다. 반면 카진스키는 하버드 기숙사 1인실에 살면서 복도에서조차 마주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로지 책만 읽는 삶.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는 삶. 그는 살인을 저지르는 와중에도 도서관과 서점을 오가며 책을 열렬히 읽었다. 이들 책은 그가 현실을 감지하는 씨줄과 날줄이 되었다. 대학교수였던 그는 교수직을 버리고 몬태나의 야생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지었다. 현관문을 나서는 그에게는 자아를 바깥으로 꺼내줄 친구가 없었다. 혼자는 종종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그는 수학적 천재에 차가운 증오의 감정을 더해 폭탄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딛은 행보로 그는 3명을 차례로 죽이고, 약 20년간 26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대개 팔다리가 날아가고, 몸이 산산조각 났다. 『살인자의 정신』은 거대한 세계, 교육 시스템, 현대의 정신을 카진스키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들여다보는 대단한 책이다. 이 작품으로 인해 당신이 신뢰했던 책과 지식의 세계는 그 한 모퉁이가 무너질 것이다. 독서는 언제나 고독을 필요로 하지만, 고립된 자의 독서는 세계와 인간을 비인격적인 틀 속에 넣어 세계를 파괴하게끔 만든다. 엄청난 다독가에 엄청난 집필가였던 아이히만 역시 피상적 독서의 대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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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정신: 유나보머, 하버드의 살인자』
올스턴 체이스 지음 | 김현우 옮김(출간 예정) |
『모옌 기담집: 기기괴괴한 열한 가지 이야기』
모옌 지음 | 김택규 옮김(출간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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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여행 친구가 둘 있다. J와 K. 나는 여행지로 대도시를 선호한다. 뉴욕, 리스본, 샌프란시스코…… 내게 결여된 것은 소도시 감성이다. K는 나와 정반대다. K는 구라시키 같은 일본의 소도시를 사랑한다. J는 유연해서 대도시도 좋아하고 소도시의 정취도 즐긴다. K와 J는 지난 몇 년간 나를 평창이나 오대산으로 데려가 몸의 리듬과 생각을 조금씩 바꿔주었다. 두 사람이 안긴 이런 경험은 혼자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데, 라갸느리의 우정과 비교하자면 좀더 옛 정취가 스며 있다. 둘은 각각 광주, 전주 출신이어서 그런 감성이 살아 있는 걸까.
산둥성 가오미시 둥베이향 출신의 모옌에게 나와 타인의 경계를 넘는 것 따위는 너무 쉽다. 그는 주로 여우, 고양이, 호랑이와 소통하고 요괴와도 이야기한다. 이는 단순히 그가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대륙적 스케일로 자연과 인간 사이에 구분이 없다는 걸 작품을 통해 진실로 드러낸다는 뜻이다. 거기엔 여우의 슬픔, 늑대의 한숨, 호랑이의 간절함이 흙냄새나 나무 냄새와 함께 배어 있다. 모옌은 이 모든 이야기와 감성이 자신의 고향 둥베이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너무나 소박하게도 자아 바깥으로 외출하길 바라는 정도지만, 모옌은 열한 편의 소설을 통해 인간 바깥으로 외출해 동물의 몸속으로 곧잘 들어간다. 그런 감정이입 속에서 모옌은 마치 위험에 빠진 생물종들과 친척이 되자고 선언하는 독창적인 사상가 도나 해러웨이를 닮은 듯도 하다. 4월에 함께 선보일 『모옌 기담집』은 그처럼 광의의 우정과 세계를 보여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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