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공부를 시작한 뒤로 독서의 결이 달라졌다. 삶의 반경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책들을 볼 때마다 불안과 아쉬움이 크지만, 철학 텍스트의 힘을 믿으며 시간을 단방향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오늘 아침엔 찰스 칸의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적 대화』 ‘파이드로스’ 부분을 읽고 출근했다. 플라톤에게서 형용사나 부사를 매혹적으로 쓰는 방법을 배울 순 없지만, 이야기의 구성력과 난도 조절, 앎과 이데아를 향해 밀고 나가는 (우회적) 힘에서 문학적 천재를 느낀다. 그 맥락을 조금 더 잘 이해하고자 칸의 책을 샀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적 대화』는 쌍둥이 격인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적 대화, 그 이후』까지 합하면 총 1268쪽인데, 올해 틈틈이 읽으려 한다. 이 모든 것은 플라톤의 『국가』(738쪽)를 제대로 읽기 위한 준비체조이기도 하다.
일 마치고 집에 와서도 벽돌책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이유는 글항아리에서 벽돌책들을 만들며 단련해온 (지적) 지구력 덕분이다. 벽돌책은 얇은 책보다 구심력이 훨씬 더 강한데, 이 책들을 편집하는 게 늘 주 업무였다. 회사 주소가 회동길 210이던 시절, 나는 10년간 회동길 290에 살았다. 두 곳 사이를 오가며 장펀톈의 1152쪽짜리 『진시황 평전』 교정지를 들고 다니던 일은 머릿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다.
회동길의 오후
벽돌책 독서는 뇌의 회로를 명료하게 할 만큼 분명하고 좋은 앎을 심어주면서, 종종 마음의 모양새까지 바꿔놓는다. 사실 이런 책의 편집은 그걸 써낸 저자에 비하면 한 줌의 노력밖에 들지 않는 일이다. 그렇더라도 언제나 50퍼센트의 지성(혹은 기억력)과 50퍼센트의 정서적 노동을 요한다. 하나의 오류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생겨나는 긴장감은 얇은 책을 편집할 때보다 훨씬 더 높아져, 오히려 실수가 적은 게 벽돌책이기도 하다.
최근에 나는 세 권의 책을 동시에 편집했다. 『남성 판타지』(클라우스 테벨라이트, 1464쪽),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말하라, 침묵이여: W. G. 제발트를 찾아서』(캐럴 앤지어, 1008쪽). 앞의 둘은 책임편집, 나머지 하나는 보조편집이었다. 가운데 것은 장강명 작가가 쓴 ‘책에 관한 책’인데, 360쪽짜리의 이 얇은 저술은 테벨라이트와 앤지어의 원고를 편집할 때 큰 힘이 되었다. 장강명 작가는 누구보다 벽돌책 옹호자이고, 자신이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힘의 상당한 지분은 벽돌책 작가들에게 있다고 이야기한다.
『말하라, 침묵이여』는 서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남성 판타지』는 곧 출간됩니다.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은 장 작가가 다년간 읽어온 벽돌책 100권에 대한 것이다. 그는 벽돌책을 하나의 ‘장르’로 인식한다. 부피가 주는 순수한 스타일. 벽돌책을 일곱 유형으로 분류한 뒤 각 권의 독서 경험이나 내용의 한 파편을 100편의 에세이로 썼는데, 그답게 뛰어난 필력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그는 문해력을 기르는 해법도 ‘태도’에서 찾고, 벽돌책에서 얻는 가장 귀중한 것도 지적 겸손이라는 ‘태도’라고 말한다. 물론 종합건설지성으로 크고 복잡한 사고를 고해상도로 할 수 있는 것 역시 벽돌책 독서에서 얻는 제1의 수확이다.
편집자로서의 경험을 말하자면, 출판 시장에서 벽돌책은 승률이 높다. 얇은 책들이 가벼운 미소를 흘릴 때 벽돌책은 점잖게 있지만 과녁에 명중할 확률이 높다. 모든 것이 속도전을 벌이면서 내일이 오늘을 배반할 때, 벽돌책은 집요하게 자기만의 맥락을 유지하며 하나의 대안이 되어준다. AI 시대에 장강명 작가는 오히려 느린 벽돌책 읽기를 더 많이 하고 있고, 글항아리 역시 마찬가지다. 거기서 지적 능력을 구축하는 것뿐 아니라 생존할 방법까지 찾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벽돌책은 가장 정직한 책이기도 하다. 얇은 책에서는 여러 장치를 함으로써 작가가 지닌 피상성을 들키지 않을 수 있지만, 압도적 분량의 책을 써낼 때는 밑천이 금세 드러난다. 하나의 개념적 균열은 전체 사유 체계의 연쇄 붕괴마저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니 지적 정직함 혹은 겸손함이 가장 확실한 게 벽돌책일 가능성이 높고, 미적인 질서나 절제의 미덕도 더 잘 발휘되곤 한다. 이 점을 나는 존 맥피의 『이전 세계의 연대기』(960쪽)를 편집하면서 깊이 느꼈다.
『살면서 한번은 벽돌책』 장강명 지음, 3월 출간 예정
벽돌책을 쓰고 읽는 데에는 절대량의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속에서 종종 문명의 꽃 혹은 형이상학적 사유의 꽃이 피어난다.
내 책장에는 아직 읽지 못한 벽돌책이 여러 권 꽂혀 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먼저 읽고 싶은 것은 브뤼노 라투르의 『존재양식의 탐구』(744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