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자동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컨베이어벨트 위에 놓인 택배 물건들처럼.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어떤 한 사람, 한 사건, 한 풍경이 순간을 움켜쥐어 그걸 표면으로 끌어올립니다. 이는 곧 경탄이나 경악을 자아내면서 삶을 충동합니다. 충동은 에너지를 솟아나게 만들고요. 글항아리에서는 요즘 번역가 김현우 선생님이 그런 경탄을 자아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범죄가 사회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창窓이 될 수 있다며, 미국과 일본에서 일어난 최악의 살인 사건 도서들을 들고 출판사를 방문했습니다. 맞습니다, 오래전부터 존 버거의 책들을 부드럽고 아름답게 번역해온 그분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빈센트 부글리오시의 『헬터 스켈터: 맨슨 살인 사건의 진실』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타인이 시간을 쓰는 방식을 보면 그의 삶이 짐작됩니다. 아침에 열어보는 저자의 새벽 2시 메일은 애정을 갖게 만듭니다. 밤늦게까지 글을 쓰셨구나, 하면서요. 메일의 발송 시간은 하나의 매듭이 지어지는 때이고, 그 매듭들이 모여서 독자들의 서재를 채웁니다. 김현우 선생님은 방송국 PD인데요, 낮에는 방송을 만들고 밤과 주말엔 번역을 합니다. 그가 어느 날 1144쪽 분량의 번역 원고를 보내오셨어요. 새벽 4시가 찍힌 메일 발송 시각은 존경의 마음을 저절로 자아냈고요.
‘책’ 하면 요즘은 시간, 기록, 기억, 문장, 마음……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30년 전이라면 아마 ‘정신’이나 ‘지식’이 맨 앞 칸을 차지했겠지요. 편집자는 저자, 번역가, 독자의 목격자입니다. 목격자의 본분은 보고 듣고 읽고 냄새 맡은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고 아름답게 그 일을 레터로 차근차근 해보겠습니다. 레터의 이름은 ‘먼저 본 책’입니다. 기대해주세요.